야경에서도 아름다움을 더하는 알로카시아야경에서도 아름다움을 더하는 알로카시아
Posted at 2010/03/13 02:23 | Posted in 照片야경과 함께한 알로카시아 꽃은 너무나 아름답네요.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알로카시아와는 조금 다른 형상인데요.
대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대만에서는 海芋 라고 부르죠
롱길로바(A. longiloba)는 말레이반도가 원산지이다. 필리핀이 원산지인 산데리아나(A. sanderiana)는 잎이 삼각형이고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지며 은빛이 도는 맥이 있어 아름답다.
이곳은 양명산에 위치하고 있는 알로카시아 꽃밭입니다.
포인트 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알로카시아 꽃피우기가 힘들어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온도유지가 힘들기 때문인데
예전에 어머니께서 키웠던 알로카시아 꽃 피웠던 기억이 다시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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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타파 릴레이_타이완을 얼마나 아세요?편견타파 릴레이_타이완을 얼마나 아세요?
Posted at 2009/07/19 00:40 | Posted in 台灣오마이 뉴스의 편견타파 릴레이로서 바로바로님의
편견타파 릴레이_중국유학중인 역사학도에게 편견이란?
받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사진에 심취하여 중국, 대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을러서 그럴까요?
여러이슈들이 많은데 그냥 스쳐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주절하라는 것도 아니고 바로님이 정확하게 주문한 내용은
타이완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 이란? 이야길 풀어나가기 전에 중국어 공부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봅니다.
제가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중국에 쏠려있습니다.
중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후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중문과를 선택하였나?
1. 그냥 좋아서
홍콩영화가 좋아서 혹은 중문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혹은 제2외국어를 중국어를 했는데 재미있고 더 공부하고 싶어 대학 진학까지 중문과로 왔다
등등의 의견
2. 전망이 좋다고 해서
들어본 이유중에 가장 많은 이유중 하나이다.
21세기는 중국의 시대이다 등 주위에서나 언론에서 떠들어 대니, 소위 중국어가 좀 뜬다니깐 밝은 미래를 위해
선택했다는 친구들
3. 성적에 맞춰서~
우리나라 입시 제도 하에서는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문제죠
아시다시피 전국에는 지금 200여 개의 대학에서 중국어과, 중국과, 중문과, 관광통역학과, 통번역대학원, 중국전문대학원 등의 이름으로 중국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에 유학을 가있는 우리 한국 유학생들만 해도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부분까지 합해 5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내 초중고 방과후 학습과정, 제2외국어 과정이수자, 특목고 재학생, 일반인 중국어 학습자까지 포함하면 산술적으로 100만 명 가까운 중국어 학습자가 상존함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992년 8월24일 한.중수교 이후 중국관련학과의 인기가 급상승하여, 현재 국내주요 대학의 학부에서는 중문과가 오히려 영문과보다 점수가 초과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중국관련 부문에 있는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중국어만 냅다 파고 있다?
중국어를 잘하고,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노력은 좋지만, 한국사람은 절대 중국인처럼 발음하거나 회화를 구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조선족의 경우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우리보다 훨씬 더 경쟁력 있게 구사할 수 있으므로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다녀온 유학생들보다, 중국인 현지채용이나, 조선족들을 우대 채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즉, 중국어가 모든 SOLUTION인 것처럼 한 우물만 파고 있으면,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좁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중국어, 중국 관련학과 교수, 통번역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정말 많은 시간과 경제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긴 여정이 될 것이구요, 그렇지 않은 경우 중국어는 관련 업무에 필수, 혹은 부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됩니다. 즉, 네이티브처럼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말이 중문과, 중국어과일뿐 중국에 대해 전혀 모른다.
위 첫번째 제시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중문과 혹은 중국어과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HSK혹은 회화가 전부인양 ALL IN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Absolutely NO 이구요.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사료됩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중국의 정치체제, 권력구조, 근현대사, 고대역사, 문학, 인물, 경제, 철학 등등 중국전반에 관한 식견을 갖출 것을 권해드립니다. 앵무새처럼 중국인의 말만 따라하지 말고, 그 말속에 녹아있는 지식을 기본으로 전제한다면, 그 말을 구사하는 여러분들의 지위가 올라가고, 상대방이 여러분을 쉬이 보지 못하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 아닌 중국어도 잘하는 “중국통”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힘의 논리는 강자에게 약한 것 아니겠습니까?
셋째: HSK에 목 메달지 말세요.
HSK는 자격검증시험입니다. HSK가 10급,11급이라고 해서 회사들이 맹목적으로 그 친구들을 선발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중국어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혹여 대입, 대학원 입시에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아 목숨을 거시는 경우가 있는데, 중국대학입시와 대학원입시에는 6급에서 8급 정도면 되구요, 이 급수는 단지 시험응시자격을 주는데 불과하지 10급, 11급이라고 가산점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국내 대학입시에 글로벌 전형 관련해서도 HSK는 기본 자격이고 다른 영어, 논술 시험에서 합격이 판가름 난다고 들었습니다.
즉, 간단히 말하면 8,9급 정도의 HSK성적이 나오면, 굳이 목메달고 HSK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보구요,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나 다른 전공과목에 투자를 하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HSK는 기본적으로 중국어 회화를 바탕에 두고, 회화와 듣기, 작문, 말하기가 종합적으로 구사되는 분들이 별도의 SKILL획득을 통해서 고득점을 받을수 있으므로, 중국어 회화자체도 쉬언챦으면서 영어의 TOEIC을 떠올리며, 어떤 족집게 강사를 통해, 특별한 비법을 익혀서 고득점을 얻으려는 생각은 안하시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님이 주신 숙제 이제 고고씽~
타이완과 우리나라..
최근에는 중국에 모두 관심이 쏠려있어 그닥 중요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나라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타이완 하면..
한땐 우리의 우방이었으나, 지금은 대만? 타이완?
단지 몇몇의 드라마나 연예인들을 통해 아~대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만에 대해서, 우리랑 비슷비슷한 나라?
아니, 이젠 우리보다 못한 나라? 이런 인식이 어느순간 자릴 잡히고 있질 않나 싶네요.
그리고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
물론 일본을 좋아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자면, 상당히 복잡해서 여기선 풀기 힘드니
다음에 한번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에 타이완이 등장하면서 관광을 많이가고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여행기를 웹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대만이은 한국이를 슬슬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코흘리게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냈던 친구였는데, 요즘은 소원하고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가장 사이가 안좋던 중국이와 한국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된 대만이..ㅠㅠ
게다가 한국이는 대만이를 외면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는 나는 중국이하고만 놀꺼야. 우리엄마가 부잣집 애하고만 놀라고 했단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대만이는 두 눈엔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1992년 8월 24일 우리나라는 타이완 정부에 공식적을 양국간의 수교를 단절한다고 일반적으로 통보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열리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중국과 수교를 하기 위함이었지요
이날 명동 자유중국대사고나에 걸려있던 청천백일기가 내려지자 수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명동에 모여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반공을 부르짓던 냉전시대때는 타이완과 함께 "우린 공산당이 싫어요~!!" 같이 외치면서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리~하면서 우방이었으니깐요
타이완 사람들은 신의(信義)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믿기 전까지는 의심을 많이 하지만 일단 한번 믿음이 생기면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 절대로 의심칠 않죠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돈 좀 벌어보겠다고 그들의 신의를 마치 헌식짝처럼 버리고 중국과 수교를 했으니
그 배신감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일본 식민지지배를 받았으며, 이념으로 인해 나라가 분단되었으며, 공산당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반공국가였죠
현대에 들어서는 두 나라에는 큰 비극이 있었습니다.
대만에서는 1947년 2월 28일 얼얼빠(2.28)사건과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오일팔(5.18)광주항쟁이죠
두 사건 모두 자국의 군대가 자국민들을 군화로 짓밟았던 매우 끔찍한 사건이었으니, 아픔과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듯이 그렇게 타이완과 우리나라는 서로 보듬는 사이가 되어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를 국제사회의 살벌한 논리에 따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칼에 끊어버렸다는 것은 정치 경제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타이완 국민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자리를 빌려 대신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1) PR Alive의 얌용님.
현재 미디어 유 컨설팅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얌용님
업무가 너무 많다고 요즘 마이크로블로그에만 폭 빠져계셔, 포스팅 하시라고 바통 드립니다.
2) wurifen's '巴人聚'의 우리팬님
부산에 계시면서, 중국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특히 남경쪽에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셨죠
그리고 중국관련 여러 글을 올려주시는데, 바통 받아주세요
3) 작은소망의 사진속세상 작은소망님
이미 블로그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아름다운 야경사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진 클럽에서도 계속 활동하셨고, 최근 티스토리에 이사를 오시면서, 정말 환상적인 사진을
올려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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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유학중인 역사학도에게 편견이란? //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2009/07/19 00:48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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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라고 주셨는데, 정확하게 뭘 쓰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_-;
말그대로 편견을 타파하는 내용의 글을 적는 것인지,
아님 시앙라이님이 올리신 포스트의 내용에 관한 제 생각을 적으라는 것인지요.-_-;;;
혹은 또다른 무엇?-_-+
블로그간에 하나의 주제로 릴레이형식으로 트랙백도 달고,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으나,
단지 '편견타파'라는 주제에 대해서 쓰는 릴레이라고 하니... 솔직히 갸우뚱해지네염.-_-;
일단, 난주 정신 좀 차리면-_- 시앙라이님이 쓰신 포스트의 내용을 토대로, 제 생각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롤러코스터를 닮은 교량롤러코스터를 닮은 교량
Posted at 2009/07/08 13:51 | Posted in 台灣위 사진은 어떤 모양의 다리같아 보이시나요?
쉽게 볼 수없는 특이한 다리 입니다.
어떻게 보면 롤러코스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용의 형태를 하고 있어 보이고
흥미로운 교량임에는 틀림없는듯 합니다.
여기는 바로 어딘고 하니
우리나라는 아니구요
타이페이시 허삔공원(河濱公園)에서 찍은 사진이구요
지롱(基隆)에서 중산고속도로(中山高速公路) 진입하는 곳에 있는 교량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쁜 교량들이 많습니다.
아직 시간적 여유와 기회가 닿질 않아 한강에 수많은 교량들을 찍어보진 못했는데요
시간나는대로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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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있는 다리에요 하고 물어볼려고 했더니 울나라가 아니군요..ㅠㅠ
아침부터 억수같은 비가 내리네요...건강한 하루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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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소망을 기원하는 용산사 풍경간절히 소망을 기원하는 용산사 풍경
Posted at 2009/04/23 23:08 | Posted in 台灣/旅行
너무 많은 신들에 대한 빠이빠이, 타이완의 민간 신앙
"타이완 사람들은 뭐든 닥치는 대로 빠이한다." 사람, 귀신, 신을 가리지 않고 모셔 놓고 빠이빠이하는 자신들을 비꼬며 하는 말이다. '빠이'나 '빠이빠이'란 말을 우리말 한 마디로 번역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사전을 찾아보면 '빠이'는 '절하다', '공경하다', '빠이빠이'는 '타이완과 민남(푸젠 성 남쪽) 지역에서 명절날 행하는 제례 의식'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민간 신앙에서 빠이란 단순히 절하다, 공경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으며 빠이빠이 또한 단순한 제례 의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잦은 행사이다. 타이완 사람들의 신앙은 꽤 복잡한데 그 민간 신앙에서 치르는 의식을 통틀어 빠이빠이라고 한다.
타이완의 삼대 명절로는 설날인 춘절, 단오절과 중추절을 꼽는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핵가족화된 타이완의 명절 분위기는 우리만큼 떠들썩하지는 않다. 타이완에는 삼대 명절뿐 아니라 크고 작은 명절이 많이 있고, 그 밖에도 빠이빠이라는 특수한 민간 신앙 의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와 타이완의 국교가 끊긴 뒤 지금 우리나라와 타이완을 오가는 비행기는 케세이퍼시픽과 타이항공뿐이다. 겨울이 되면 비행기는 타이완의 스키 관광객들로 가득차 중요한 일이 있는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 타이완 관광객들의 관광 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경복궁인데, 그이들은 경복궁에 도착해서 상당히 의아해 한다. 타이완의 궁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궁은 왕과 왕족들이 살던 기품 있고 고풍스러운 왕궁이지만, 타이완의 궁은 빠이빠이하는 곳이다. 그래서 타이완 사람들은 기와를 얹은 집을 보면 무조건 빠이빠이하는 곳을 떠올린다.
타이완의 궁은 빠이빠이하는 곳
타이완의 궁에 도착하여 놀라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타이완에는 대도시에서 시골 구석까지 어디에나 궁이 있는데, 향냄새가 진동하고 사람들마다 서서 무언가 열심히 빌고 있는 모습은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지난궁(지남궁), 티옌허우궁(천후궁), 펑티옌궁(봉천궁), 징안궁(경안궁), 뚱룽궁(동릉궁) 같은 타이완의 궁들은 왕궁이 아니라 신을 모셔 놓고 빠이빠이하는 장소이다. 궁뿐 아니라 묘도 많이 볼 수 있다. 묘란 본래 조상, 신, 불상 그리고 선대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셔 놓은 곳이나, 오늘날은 주로 도교 사원을 가리키는데 타이완에서는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을 모두 사묘라고 부르고 있다.
이주민 조상들의 염원이 깃들인 민간 신앙
오늘날 타이완에서 유행하고 있는 종교는 불교, 도교, 유교, 일관도, 기독교, 천주교 들이 있다. 타이완의 종교를 말하자면 민간 신앙을 빼놓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민간 신앙 또한 종교의 하나다. 민간 신앙은 타이완 사회의 주요한 문화 현상이며 사람들의 정신을 안정되게 하는 문화 종교의 구실도 한다. 타이완에는 여러 종교가 성행하고 있지만 유교, 불교, 도교와 이 세 가지가 융합된 민간 신앙이 가장 보편적인 종교이다.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이지만 민간에 깊이 파고들어 그이들의 풍속과 인생관,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민간 신앙이다.
민간 신앙을 믿는 사람들을 숫자로 파악할 수는 없다. 민간 신앙이 불교, 도교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믿는 종교가 민간 신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도교는 후한 때 장도릉이 창건한 하나의 고대 정령 신앙이다. 노자의 사상과 유가, 불교가 섞인 종교로서, 오랜 변천 과정을 거쳐 남방 도교가 완성되었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은 도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도교의 색채가 짙고 민간 신앙과 도교를 혼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은 본질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중국 대륙의 푸젠(복건) 성 남부와 광둥(광동) 성 동부 일대와 맥을 같이한다. 지금 타이완에 살고 있는 한족들의 조상이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에 푸젠과 광둥 일대에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이민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몇백 년 전 바다를 건너 타이완을 개척하기 위해 건너온 사람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순조롭게 오지를 개척하려는 염원으로 고향에서 모시던 수호신을 배에 모시고 타이완 섬에 도착했다.
당시 타이완은 척박하고 산세도 험하였으며 천재지변이 수시로 사람 목숨을 앗아가곤 하였다. 이 시기에 빠이빠이하는 대상은 보통 각 가정에서 모셔온 향의 불씨와 신상 또는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들어 보존한 신상들이었다. 이주민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질병과 재난이었다. 개척 시대에 의원이나 약재는 턱없이 모자라서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병을 치료해야 했다. 또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은 무서운 풍랑에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고, 오지를 개척하기 위해 줄을 잇는 이주자들은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야 했으므로 그이들에게 바다는 무서운 존재였다. 이런 열악한 현실은 민간 신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마을 사람들을 지켜 주는 신 마조
타이완 사람들의 빠이빠이 대상은 유교, 불교, 도교에서 숭상하는 인물들을 비롯하여 자연신, 전설신, 동물신, 인귀신, 식물신, 심지어 조상신까지 폭넓다. 오죽하면 누구든 뭐든 가리지 않고 빠이빠이한다고 할까. 자연신의 경우 천신 옥황대제, 토지신 토지공, 북극현천상제, 사해용왕 들이 있다. 인귀신은 본래 사람이었으나 죽은 뒤 신이 된 역사의 인물을 가리키며 마조를 대표로 들 수 있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에서 가장 널리 추앙되고 있는 신은 마조와 토지공이다.
타이완에서 마조는 '천상성모', '천후'라고도 불린다. 타이완은 네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고 마조는 해상수호신의 하나이므로 그 신앙은 특별히 중시되어 왔다.
전설에 따르면 마조의 속명은 임 묵냥이었다. 구백육십년에 푸젠 성 포전 현 미주 도에서 태어나 구백팔십칠년 스물여덟 살에 죽었다. 마조가 태어날 때 서북쪽에서 붉은 빛이 뻗어 내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총명하였던 마조는 마음 또한 자비로워 이를 어여삐 여긴 어느 도사로부터 깨달음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우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신이 나타나 그이에게 동부(동으로 만든 부적의 일종)를 건넨 뒤 오색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마조는 동부를 통하여 법술을 익히고 액운을 막아내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법력으로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그 뒤 마조의 전설 같은 행적은 끝없이 이어지고 하늘로 올라간 뒤에도 붉은 옷을 입은 여신이 되어 수시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풍랑을 막아 주고 세상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미주 사람들은 마조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묘를 지어 마조를 모셔 놓았다.
바다를 건너 타이완에 도착한 마조는 중국 미주의 마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미주의 마조는 본래 젊고 가냘픈 소녀의 모습으로 양옆에 천리안과 순풍이, 두 시종을 거느렸고 창과 도끼를 들고 있었으나, 타이완의 마조는 살이 찌고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귀부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재물을 향한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오늘날 타이완 마조는 해상수호신에서 재물신으로 변하여 삼백팔십삼 개 사묘에서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땅과 재물의 신 토지공
타이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시는 신은 바로 토지공이다. 토지공을 모셔 놓은 사묘는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길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논밭에서도 흔히 토지공 묘를 볼 수 있다. 토지공에 대한 전설은 여러 설이 있으니, 주나라 때 관리였던 장 복덕이라는 설도 있고 묘지를 지키는 신이 토지공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많은 전설을 종합해 보면 토지공은 인정 많고 선량하며 됨됨이가 훌륭한 사람이었다. 토지공의 신상은 모두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백발에 흰 수염이 난 미소짓는 노인이다. 인간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인 것이다.
토지공은 본래 농민들이 모시던 신이었으나 농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부를 쌓은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재물을 늘려 주는 재신으로 바뀌어 지금은 광업, 어업,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까지 토지공을 모시며 재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력 이월 이일은 토지공의 탄신일로 집집마다 닭과 오리를 잡아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이날 토지공을 모신 큰 사묘에서는 연극 공연도 하고 여러 가지 볼거리를 행하며 토지공의 탄신을 축원하고 복을 기원하는 행사를 벌인다. 음력 팔월 십오일에도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하며 농사가 잘 되도록 도와 주신 은덕에 감사드린다. 토지공은 이미 농민의 신뿐 아니라 상인의 수호신이 되었으니 장사하는 사람들은 매달 음력 이일과 십팔일에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한다. 이런 날은 시골은 물론 대도시 거리에서도 음식을 차린 탁자를 밖에 내놓고 향을 피우는 모습을 흔히 구경할 수 있다. 이때 내놓는 음식들은 과일과 사탕, 과자들이 주를 이루는데 콜라나 스포츠 음료가 놓여 있는 걸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보통 가정에서는 음력 이월 이일과 십이월 십팔일에 빠이빠이를 하는데 장사하는 집안에서는 특별히 성대하게 치르는 편이다. 그 중간에 있는 빠이빠이는 보통 생략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갈 때에는 먼저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한다. 전에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토지공을 찾았으나, 오늘날은 집안 식구가 병이 들거나 시험을 치를 때, 아들이 입대할 때, 교통 사고가 났을 때도 토지공에게 빠이빠이한다. 농민들 또한 풍년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며 과일, 음료, 지전, 향, 초를 갖추고 수시로 토지공에게 빠이빠이한다. 토지공을 모시는 사람들 가운데 농사를 짓거나 부모가 농부인 경우 쇠고기를 먹지 않는데 평생 농사를 도와 준 소를 잡아먹는 것은 보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에서다. 그러므로 타이완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쇠고기를 먹는지 먼저 물어 보고 준비하는 게 예의이다.
마조와 토지공뿐 아니라 민간 신앙에서 중요하게 치는 신으로는 역병을 물리치는 왕야와 보생대제, 어민들의 순조로운 항해를 돕는 바다의 수호신 수선존왕을 비롯하여 청수조사, 유응공, 개장성왕, 삼산국왕, 태자야, 현천상제 들 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력 칠월은 귀신의 달
음력 칠월이 되면 타이완의 이삿짐 센터, 부동산 중개소, 웨딩 의상점과 사진관, 해수욕장 같은 곳은 잠시 문을 닫는다. 잡지나 텔레비전에서는 수시로 영혼에 관한 사건을 보도하며 해수욕장의 익사 사건, 교통 사고로 숨진 이들의 영혼에 관해 소개하고, 귀신의 달임을 특별히 강조한다. 칠월이 되면 이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타이완에 도착한 외국 유학생들은 방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음력 칠월은 귀월, 곧 귀신의 달이라고 한다. 음력 유월 삼십일이 되면 사묘마다 문 앞에 둥근 등롱을 걸어 두고 '중원을 경축한다'는 글을 써서 귀신들에게 곧 칠월임을 알려 준다. 물가에도 수등을 놓아 익사한 귀신들을 잊지 않고 부른다. 칠월이 되면 귀신들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가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는다.
칠월 초하루가 되면 귀문(지옥문)이 열린다고 하여 개귀문이라고 하는데, 이때 모든 귀신들이 지옥에서 석방된다. 이날 오후에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고기, 생선, 닭, 오리와 채소로 음식을 장만하고 떡, 과일 들을 준비하며 향을 꽂아 불을 붙이고 지전을 태워 귀신들을 위로한다.
칠월 십오일은 중원절이라고 한다. 이날은 귀문이 활짝 열리는 날로 온갖 귀신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성대한 빠이빠이를 하는데, 귀신과 마주치지 않도록 문밖 출입을 삼가며 특히 물가에는 가지 않는다. 물귀신에게 발목을 잡히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원절에는 특히 귀신들을 바른길로 이끈다는 뜻으로 '중원보도'라는 것을 한다. 보도는 바른길로 이끈다는 뜻으로 보도를 행하는 목적은 지옥문을 빠져 나온 귀신들이 인간 세상에서 말썽부리지 않고 얌전히 지내기를 바라며, 염라대왕께 하루빨리 귀신들이 인간으로 환생하도록 도와 달라며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보도에는 공보와 사보가 있다. 사보는 개인이 경비를 내 자기 집안에서 보도하는 것이고, 공보는 마을 사람들이 일정한 날을 정해 함께 보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체로 중원절인 십오일에 보도를 한다. 칠월 십오일은 도교와 불교에서도 중원절과 우란분절 행사가 있는 중요한 날이다. 중원보도의 기원은 우란분절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늘날 민간 신앙에 있어서 중원절의 뜻은 살아 계신 부모의 복을 기원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제도하는 불교의 우란분절과는 달리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귀신을 배불리 먹이고 지전을 태우는 데 그치고 있다.
칠월 이십구일 밤이 되면 귀문을 닫으니 석방되었던 귀신들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이 되면 환하게 밝혔던 사묘의 등롱을 내리고 그 동안의 빠이빠이 행사를 모두 끝낸다.
귀신들의 큰 축제 따빠이빠이
빠이빠이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것을 따빠이빠이라고 한다. 마조와 토지공의 탄신일, 중원절을 비롯하여 일정하게 정해진 날, 각 사묘에서 모시는 신의 탄생일 들에 마을 단위로 따빠이빠이를 한다. 이때 마을에 귀신 들리는 사람이 있는데, 거개가 남자로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신이 들리면 연신 머리를 흔들며 빠이빠이 행렬 앞에서 신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행렬은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며 상당히 긴 편인데 가마에 신을 모시고 북을 치며 오랜 시간 마을을 돌아다닌다. 신들린 사람은 거개가 맨몸으로, 장검으로 자신의 몸을 그어 피를 내기도 하고, 철사로 볼과 볼을 꿰뚫기도 하며, 우리의 작두와 비슷한 걸 타기도 하고, 또 뾰족한 쇠바늘 방석에 앉는 들 하여 차마 눈뜨고 보기 끔찍한 장면들이 벌어진다. 그이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죽는 일도 없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외환 보유고가 세계에서 세 번째에 드는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따빠이빠이가 있는 날은 집집마다 제각기 음식을 장만하여 집 밖에 탁자를 내놓고 그 위에 음식을 차려낸다. 신이 음식을 들고 가도록 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신을 모신 행렬이 지나가고 나면 마을에선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때는 지나가던 나그네들도 어느 집 음식이든 마음대로 먹어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나도 밍지옌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따빠이빠이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 곳의 신들린 남자는 칼로 몸을 북북 그어 피가 뚝뚝 떨어졌다.
빠이빠이에는 정성스런 마음과 함께 음식, 과일, 잔, 젓가락, 금은지, 돈, 향, 술, 세숫대야, 맑은 물, 새 수건 같은 제물들을 준비하는데, 특별히 천신께 제사 지낼 때는 앞뒤 사흘 동안 소식하는 게 좋다. 여기서의 소식이란 비린 것, 누린 것을 뺀 야채 위주의 식사를 말한다.
음식은 고기를 사용할 때는 닭, 오리 한 마리씩, 돼지고기 한 덩이, 생선 한 마리와 돼지 간 한 덩이를 사용하는데 돼지 간은 다른 고기로 대신할 수 있지만 쇠고기는 공자께 제사 지낼 때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과일은 종류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으니, 보통 빠이빠이가 있을 때는 바나나, 자두, 배, 파인애플 네 가지를 다른 제수용품과 함께 내놓지만, 재물신을 맞아들이거나 천신께 빠이빠이할 때는 네 가지에 귤을 더한다.
금은지는 금박과 은박을 입힌 지전으로, 타이완 사람들은 사묘에서 빠이빠이할 때 금지를 태우는 습관이 있다. 이는 금을 태운다는 뜻으로 신께 정성을 보이는 행위이다. 은지는 주로 조상께 제사 지낼 때나 장례 때 노잣돈으로 쓰라고 태운다. 금지는 태극금, 천금, 수금, 복금 들 하여 종류가 다양하지만 은지는 대은과 소은 두 가지뿐이다. 사묘에 가면 금은지를 태우는 화로가 있는데 지전을 태우는 습관은 낭비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요즈음 들어서는 자제하는 편이다.
행운을 점치는 척교
척교는 보통 나무의 뿌리나 대나무 뿌리를 깎아 반달 모양으로 만든 한 쌍의 도구이다. 작은 고구마를 반으로 썰어 놓은 것처럼 한쪽은 불룩 튀어나오고 한쪽은 면이 평평한 교는 신께 길흉화복을 묻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늘 사묘의 신단 위에 놓여 있다. 척은 던진다는 뜻으로, 점을 치는 도구인 교를 땅에 던져서 양쪽 모두 안쪽이 나올 때는 음교, 곧 '흉'을 뜻하고, 양쪽 모두 바깥 면이 나왔을 때는 소교라고 하여 '길'과 '흉'이 반씩임을 나타낸다. 한쪽은 바깥 면, 한쪽은 안쪽 면이 나왔을 때는 성교라고 하여 '대길'하다는 뜻인데, 척교하기 전에 먼저 신전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올린 뒤 허리를 굽혀 반절하고 신께 척교하는 까닭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 뒤 교를 집어 들고 두 손을 합장하여 다시 반절을 한 뒤 가볍게 땅바닥에 던진다. 성교가 나왔을 때는 신께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지만, 음교나 소교의 경우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척교할 때는 신에게 재물이나 돈을 바쳐야 하는데 그 값어치는 따지지 않지만, 음교나 소교가 나왔을 때에는 재물과 돈을 더 바치고 다시 척교하여 계속 성교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나올 때까지 성의를 표시하며 척교한다. 그러나 끝내 음교나 소교만 나올 때에는 신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타이완 사람들이 사묘에 가서 향을 올리는 가장 큰 까닭은 이렇게 교를 던져 자신의 소원을 점치기 위해서인 것이다.
신들의 짝짓기
타이완의 영험한 신들 가운데 출가한 부처가 아니면 신도들은 신들에게 아내를 짝지어 주며 신들의 외로움을 위로한다. 이미 아내가 있는 신들에게는 아내를 함께 모셔 놓기도 하고, 곁에 자녀들을 모시기도 한다. 아내가 없는 신에게는 훌륭한 아내를 바치며 성의를 표시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마을 단위로 따빠이빠이를 한다.
민간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토지공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며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옥황상제가 토지공에게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지 묻자 토지공은 모든 백성들이 부자로 잘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토지공의 아내 토지파는 정색을 했다. "그건 안 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있으면 돈 없는 가난뱅이도 있어야만 합니다." 토지공이 물었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소?" 그러자 토지파가 대답했다. "모두 부자로 살면 우리 딸을 시집보낼 때 누가 가마를 짓겠습니까? 가난한 이들이 궂은일을 해야 우리가 편합니다." 토지공은 아무 말도 못하였고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는 빈부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토지파의 이기적인 마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토지파를 모시려고 하지 않으니, 토지공을 모신 사묘에는 토지공만 외롭게 모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작은 시골 마을의 토지공 묘에는 토지파를 모신 곳이 없다.
신들도 선택하기 나름
푸젠의 이주민들이 타이완을 개척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일본에 점령당한 초기까지 타이완의 이주민들은 생활이 안정되어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 방식도 크게 바뀌어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장인들이 사묘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점령 말기에 일본 정부는 타이완을 억압 통치하였고 황국 신민화를 꾀했다. 일본의 압박은 종교에까지 미쳐 그이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타이완 주민들에게까지 강요하였으며, 사묘의 재산을 몰수하고 신상을 파괴하며 공개적으로 빠이빠이를 금지했다. 제이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물러갔지만 타이완으로 쫓겨온 중화민국 정부 또한 민간 신앙을 압박하였다.
천구백칠십이년 이후 타이완에 점차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제, 사회에 빠른 변화가 일어났고 민간 신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민간의 사묘를 문화 건설로 유도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천구백팔십일년 삼월에는 타이완의 사묘에 대해 중화문화 부흥 촉진을 장려한다는 내용의 시행 요강을 공포하였고 사묘의 환경을 개선하고 저급한 사회 풍토를 개선하도록 유도했다. 민간인들의 재력이 커지면서 사묘가 다시 건설되고 신상이 갈수록 커지며 사묘의 규모도 갈수록 웅장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타이완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 들어 몇몇 주요한 신께 따빠이빠이를 할 때는 주종 관계를 이루는 각 교파의 인원들이 전국에서 동원되기도 하는데, 그이들은 종교 활동뿐 아니라 선거에도 큰 영향력을 보이기도 한다.
타이완 사람들은 빠이빠이를 무척 신봉하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모시던 신이 영험하지 않으면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 빠이빠이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본래 마조에게 빠이를 했던 사람이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왕야를 찾아 빠이하고 왕야도 신통치 않으면 다시 상제공, 태자야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빈다.
잡신을 모시는 경우, 일정하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영험을 발휘하기도 한다. 나토, 오현제, 유응공의 경우 이 신들을 신봉할 때 도박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고, 강간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에서 구제될 수 있으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조종해 대신 복수해 줄 수도 있고, 귀신을 보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요즈음은 이런 잡신뿐 아니라 귀신을 모시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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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라이님, 넘 길어 솔직히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ㅠ
하지만 사진 속에 여인들은 진정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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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타이완 사람들내가 생각하는 타이완 사람들
Posted at 2008/11/20 23:51 | Posted in 台灣물론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작게 소개 되었지만, 난 유심히 살펴봤으나 그렇게 큰 주목을 끌진 못했다.
예전 전직 대통령 비리로 우리도 저런일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생각나는 몇가지를 적어보면...
대만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거의 대부분 중국 사람과 같다. 하지만, 그러므로 대만 사람과 중국 사람은 같다, 라고 하면 맞는 말이 아니다. 아마 가장 큰 범주로 말하면 우리를 대략 동이족이라 부르듯이, 좀 생소하겠지만 화하족華夏族이 되겠다. 약간 더 좁히면 화인華人, 혹은 한족漢族인데, 이 중에는 이른바 화교華僑가 다 포함되며, 대만, 싱가폴, 홍콩, 마카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다 포함되겠다.
그럼 대만 사람은 인종적으로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대만 사람은, 크게 다섯 범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첫째, 17세기부터 중국 동남부의 복건福建(푸젠, 호켄, 호낀이라고도 부른다) 성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주로 민남인閩南人(민란런, 자신들 발음으로는 만낭랑)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지방, 장주漳州와 천주泉州 출신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좀더 오래된 표현으로는 허러(河洛, 福佬, 鶴佬, Hō-ló)라고 부른다.
둘째, 광동廣東(광똥, 광뚱) 성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 있는데,이들은 광주廣州 사람도 있지만, 그 이전부터 중국 북부 지방에서 흘러온, 심지어는 몽고나 코카시안과도 혈통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객가客家(커쟈, 자신들은 하카라고 부른다)가 있다.
셋째, 이 둘은 17세기부터 꾸준히 도해해 왔는데, 이들을 대략 본성인本省人이라고 부르고, 1949년 이후 장개석과 함께 들어온 사람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중국 각지의 여러 성 출신들이 많이 섞여 있다.
그 리고 넷째로는 원주민原住民이 있는데, 크고 작은 14개 부족이 있다. 사실 13개 부족에 속하지 않는 부족들도 있지만 워낙 오랜 세월 한인들과 섞여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들을 평보족平埔族(핑부주)이라고 따로 부르며, 이렇게 핑부주와 함께 부를 때는 14개 원주민을 고산족高山族(까우산주)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신주민新住民, 이들은 이른바 외적배우外籍配偶, 즉 동남아 각국에서 온 여성들을 포함하여 대만인과 결혼한 외국인들인데, 현재는 그 2세들도 포함한다. 물론 숫자로는 이른바 따루大陸, 즉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이 압도적 다수지만, 외견상 동남아 출신들이 많아 보인다. 한편, 다른 분류에 의하면 이 '신주민'이라는 표현이 위에서 말한 외성인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 각각을 족군族群이라고 부르는데, 꼭 인종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본성인과 외성인은 인종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역사적 연원이 달라서 나중에 온 사람을 외성인 혹은 신주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인(허러랑), 하카, 외성인, 원주민 등을 이른바 사대족군四大族群이라고 하며, 어떤 경우는 신주민까지 포함하여 오대족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분포로 따지자면 본성인들이 70% 정도로 가장 많고, 하카인이 15% 정도, 외성인이 14% 정도, 그리고 원주민이 2~3%라고 한다. 물론 이 숫자는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대략 그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이밖에 신주민도 무려 40만 가까이 된다.
그리하여 이들을 모두 타이완인, 대만인臺灣人이라고 부른다.
몹시 복잡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경험이 특이한 것이지, 이 정도의 인종 다양성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갈등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크게 보아 평화롭게 살아간다. 차별도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기는 있다. 특히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차별이 좀 있다 싶다. 하지만 이들 족군 사이는 정부나 사회적으로 각별히 신경써서 다루고, 또 사람들도 그리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로 어울려 잘 살아간다.
즉,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평범한 나라다. 아래는 대만 여러 곳에서 찍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역시 아시아인, 얼핏 한국 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사실 중요한건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겠다. 친절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대만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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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마~ 호박툰 생일날.. 문자.. 고마바여~
답문해야지 해놓고 깜빡(ㅠㅠ)
요즘 나 정신줄 놓고 살아잉.. 흑!
담에 또 만납세다! 오늘도 해피데잉~
約定- 張學友 & 王菲約定- 張學友 & 王菲
Posted at 2008/11/13 13:15 | Posted in Hobby/China-pops장학우와 왕비 말하지 않아도 참으로 유명한 중화권 가수이다.
오늘 중꽝에서 라디오 듣다가 이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다.
간만에 들으니 감회가 새로워서 다시 들어보고자 이렇게 포스팅으로 남기기
둘이찍은 사진이 안보여서 우울하게 조문한 사진을 붙여넣었는데 영 안어울린다.
게다가 대만사이트 들어가서 오늘 본 큰 사건
천쑤이삐엔 구속 되었구나
한국은 왜이리 조용하지? 간만에 포스팅 거리가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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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228사건(二二八事件)대만의 228사건(二二八事件)
Posted at 2008/11/11 11:43 | Posted in 台灣대만의 2·28사건.
1947년 당시 타이페이 시에서 전매국 단속원들이 밀수 담배를 팔던 한 좌판상 여인을 과잉단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해 대만인 한 명이 사망함으로써 촉발된 사건으로, 대만 본토출신인 '대만인(본성인)'과 대륙에서 온 이른바 '외성인' 사이의 갈등요인이 됐다.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타이완섬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중국 대륙 본토의 한족(漢族)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부터 국민당은 국부군을 대만에 파견하는 등 인수작업 실시하였고, 1949년 '중화민국'을 세우기까지 대륙의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이에따라 대만의 한족(漢族)은 중국 대륙에서 조기 이주해온 본성인(本省人 대만인)과 1949년 전후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본성인은 전인구의 85%, 외성인은 1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의 갈등으로 일어난 사건이 소위 '2·28사건'이다.
'2·28사건'은 1947년 2월 27일 타이페이역 근처에서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고 있던 여성을 본토 출신의 전매국 단속반원이 구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대만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사상자가 나왔다.
사태는 일거에 확대돼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3월 1일 이후 전 섬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당황한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3월 8일 본토에서 2개 사단의 진압군을 대만으로 불러들여 3월 9일부터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등 무고한 대만 원주민들이 무참히 죽었고 현지의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인 언론인들도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정부 발표로만 2만8천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다.
이 사건은 대만 토박이들과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한 뒤 대만으로 피란한 중국인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 이후 국민당 정부의 군사 독재는 1949년에서 1987년까지의 계엄령으로 이어졌으며, '백색공포'로 알려진 40년의 탄압정치로 이어졌다.
1987년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에는 이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8년 리덩후이 정권이 출범한 후 '2·28 사건'의 진상조사가 진행되었다. 4년간에 걸친 진상조사 끝에 나온 공식보고서에서는 당시 사망자가 본토 이주자 7백 ~8백명을 포함해 1만 8천~ 2만 8천명이라고 발표했다.
1995년에 2월 28일에는 사건발생 48년만에 리덩후이 총통이 국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가족에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2월 28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고 사건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이날 대만 타이베이 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결국 1997년 대만정부는 사건 50주년을 맞아 과거정권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공식사과를 발표하고 2.28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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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던 비는 이제 좀 멈추었네요~
힘찬 한주 시작하세요^.^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미스터브랜드님도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제가 알고 있는 카라 꽃 아닌가요?ㅎㅎ꽃이름을 잘 몰라서리 ㅎ